본문 바로가기
이야기 속 생각

시간을 아끼려고 할수록 왜 더 바빠질까? 《모모》가 들려주는 시간 이야기

by 오기로운 2026. 10. 5.

해야 할 일이 많은 날에는 시간이 조금만 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됩니다. 아침부터 해야 할 일을 하나씩 처리했는데도 저녁이 되면 아직 끝내지 못한 일이 남아 있고, 잠깐 쉬고 있으면 괜히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시간을 아껴보려고 합니다. 이동하는 동안 필요한 것을 찾아보고, 기다리는 시간에는 휴대전화를 확인하고, 해야 할 일은 최대한 빠르게 끝내려고 합니다. 하나를 하면서 다음에 할 일을 생각하기도 합니다.

 

분명 시간을 아끼려고 열심히 움직였는데 이상하게 하루가 끝나면 여유가 생겼다는 느낌보다는 오늘도 정신없이 지나갔다는 느낌이 더 강하게 남습니다.

 

미하엘 엔데의 소설 《모모》를 떠올리면 이런 모습이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모모》에는 사람들에게 시간을 아껴야 한다고 말하는 회색 신사들이 등장합니다. 사람들은 그들의 말을 들으며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시간을 줄이기 시작합니다. 누군가와 오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 천천히 쉬는 시간, 함께 놀거나 별다른 목적 없이 보내는 시간까지 아껴야 할 대상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그렇게 시간을 절약하면 당연히 이전보다 많은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야기는 오히려 반대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사람들은 점점 더 바빠지고, 삶에서 여유도 사라집니다.

 

시간을 아끼고 있는데 왜 정작 자신의 시간은 없어지는 걸까요?

미하엘 엔데 소설 모모 책 표지
《모모》 책 표지 (이미지 출처: 비룡소)

 

 

시간을 아끼기 시작했는데 왜 삶은 더 바빠졌을까?

시간을 절약한다는 말 자체는 나쁜 말이 아닙니다.

 

한 시간 걸리던 일을 30분 만에 끝낼 수 있다면 남은 30분을 내가 원하는 데 사용할 수 있습니다. 불필요하게 반복하던 일을 줄이는 것도 분명 도움이 됩니다.

 

그런데 《모모》를 읽다 보면 중요한 건 아낀 시간을 어디에 사용하는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야기 속 사람들은 시간을 아끼기 위해 점점 더 많은 것을 빠르게 처리합니다. 처음에는 여유를 만들기 위한 행동처럼 보이지만, 어느 순간부터 빨리 움직이는 것 자체가 삶의 방식이 됩니다.

 

하나를 빨리 끝내면 그만큼 쉬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일을 합니다.

 

저도 가끔 비슷합니다.

 

오늘 해야 할 일을 예상보다 빨리 끝내면 “오, 시간이 남았다” 하면서 쉬기보다는 그동안 미뤄두었던 다른 일을 하나 더 꺼냅니다. 그것까지 끝내면 또 다른 일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러다 보면 이상한 일이 생깁니다.

 

시간을 아끼는 능력은 늘었는데 쉬는 시간은 별로 늘어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빈 시간이 생기는 순간 무엇인가 해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잠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으면 “이 시간에 이것이라도 해둘걸”이라는 생각이 먼저 떠오릅니다.

 

결국 문제는 시간이 부족한 것만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아낀 시간을 다시 해야 할 일로 채우고 있다면 아무리 시간을 절약해도 여유가 생기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모모》 속 사람들이 잃어버린 것도 단순히 시계로 계산할 수 있는 몇 시간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속도로 하루를 살아갈 수 있는 마음의 여유에 더 가까웠던 것은 아닐까요.

바쁜 일상 속 잠시 멈춰 따뜻한 차를 마시며 여유를 보내는 모습
시간을 아끼려고 할수록 왜 더 바빠질까? 《모모》가 들려주는 시간 이야기

 

쓸모없어 보이는 시간은 정말 낭비일까?

어릴 때를 생각하면 지금 기준으로는 꽤 비효율적인 시간이 많았습니다.

 

친구와 별다른 목적 없이 놀기도 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다 보면 한참 시간이 지나 있기도 했습니다. 무언가를 하다가 딴짓을 하기도 했고, 그냥 가만히 있는 시간도 있었습니다.

 

그때는 그런 시간을 굳이 낭비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른이 되고 나면 시간을 보는 기준이 조금 달라집니다.

 

같은 한 시간이라도 무엇인가 결과가 남으면 잘 보낸 것 같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면 아깝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집안일을 했다면 한 일이 보이고, 공부를 했다면 배운 것이 남고, 일을 했다면 결과물이 생깁니다.

 

반면 누군가와 한참 이야기한 시간이나 아이와 장난치며 보낸 시간, 멍하니 창밖을 보며 쉬었던 시간은 무엇을 했는지 설명하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정말 그런 시간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 걸까요?

 

생각해보면 오래 기억에 남는 순간은 오히려 계획표에 적어두었던 일이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해야 할 일은 계속 있었는데 잠깐 하던 일을 멈추고 아이들과 웃었던 순간처럼, 당시에는 별것 아닌 것 같았던 시간이 나중에는 더 선명하게 기억되기도 합니다.

 

반대로 아주 바쁘게 많은 일을 처리했던 하루는 분명 열심히 살았는데도 시간이 지나면 무엇을 했는지 잘 기억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모모》를 읽으며 시간의 가치를 꼭 생산성으로만 계산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것도 만들어내지 않았다고 해서 의미 없는 시간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쉬는 시간은 다시 움직일 힘을 만들기도 하고, 누군가와 나누는 대화는 관계를 이어주기도 합니다. 혼자 아무것도 하지 않

는 시간에는 그동안 정신없이 지나쳤던 생각이 뒤늦게 떠오르기도 합니다.

 

물론 해야 할 일을 미루면서 모든 시간을 보내도 괜찮다는 뜻은 아닙니다.

 

현실에서는 정해진 시간 안에 처리해야 하는 일도 있고,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필요한 순간도 분명 있습니다.

 

다만 효율적이지 않은 시간과 의미 없는 시간이 꼭 같은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차이를 잊어버리면 우리는 쉬고 있으면서도 쉬지 못하게 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시간을 많이 가지는 것보다 어떻게 보내는지가 중요할지도 모른다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결국 시간 관리 방법을 떠올리기 쉽습니다.

 

일찍 일어나기, 계획표 만들기, 할 일의 우선순위 정하기, 휴대전화 보는 시간 줄이기처럼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한 방법은 많습니다.

 

저도 이런 방법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모모》는 조금 다른 질문을 남깁니다.

 

그렇게 아껴서 만든 시간을 나는 무엇을 위해 사용하고 있는가?

 

한 시간을 아껴서 또 다른 일을 한다면 우리는 더 많은 일을 해낼 수 있습니다. 그것이 필요한 시기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루의 모든 빈칸을 계속 채우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시간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에 쫓기면서 하루를 통과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 수도 있습니다.

 

저는 가끔 하루를 돌아보며 “오늘도 한 게 별로 없네”라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날은 거의 없습니다.

 

밥을 먹고,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고, 필요한 일을 처리하고, 잠깐 웃기도 하고, 쉬기도 했습니다.

 

단지 그중 일부가 할 일 목록에 적혀 있지 않았을 뿐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하루를 너무 자주 얼마나 많은 일을 끝냈는지로 평가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모》 속 시간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숫자처럼 보이지만, 결국 각자가 살아가는 삶 그 자체와 닿아 있습니다.

 

그래서 시간을 잘 쓴다는 것은 모든 순간을 빈틈없이 활용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의미일 수 있습니다.

 

때로는 아무 목적 없이 쉬는 시간도 필요하고, 누군가의 이야기를 천천히 듣느라 계획보다 늦어지는 날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해야 할 일을 잠깐 미뤄두고 지금 눈앞에 있는 사람과 웃는 시간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런 순간까지 모두 낭비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시간을 아끼면서도 정작 그 안에서 살아가는 순간을 놓칠 수 있습니다.
저 역시 바쁜 날이면 가장 먼저 “시간이 없다”는 말을 합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그 말을 하기 전에 한 번쯤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정말 시간이 없는 걸까. 아니면 내 시간의 모든 빈칸을 무언가로 채우려고 하고 있는 걸까.

 

《모모》를 읽고 나면 시간을 더 잘 관리해야겠다는 생각보다 오히려 내가 가진 시간을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시간을 아끼는 것도 필요하지만, 아낀 시간까지 다시 바쁘게 채울 필요는 없을지도 모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몇 분, 아이와 쓸데없는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 천천히 밥을 먹는 순간처럼 효율로 계산하기 어려운 시간도 결국 하루의 일부입니다.

 

어쩌면 시간을 잘 보낸다는 것은 하루에 더 많은 일을 집어넣는 것이 아니라, 지금 보내고 있는 시간을 내 삶의 한 부분으로 제대로 느끼는 것에 더 가까운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