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이미 결론을 내리고 있었던 순간
처음 가는 모임을 앞두고 ‘나는 낯선 사람들이랑 금방 친해지는 성격이 아니니까 오늘도 어색하겠지’라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고 모임에 가면 평소보다 말을 먼저 꺼내기가 어려워집니다. 누군가 말을 걸어도 짧게 대답하고, 괜히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며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모임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면 생각합니다.
‘역시 나는 이런 자리에 잘 못 어울려.’
처음 예상했던 그대로의 결과가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조금 이상합니다. 정말 처음부터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할 상황이었던 걸까요? 아니면 ‘어차피 잘 안 될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말을 덜 걸고 사람들과 거리를 두었던 행동이 결과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준 걸까요?
공부나 일에서도 비슷한 순간이 있습니다.
‘나는 원래 수학을 못해.’
‘이건 해봤자 안 될 것 같아.’
‘저 사람은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을 거야.’
이런 생각들은 마음속에서만 머물러 있는 것 같지만 때로는 우리가 무엇을 시도하고, 얼마나 오래 해보고, 상대에게 어떤 태도로 다가가는지에도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달라진 행동이 실제 결과에 영향을 주면 처음의 예상은 더욱 확실해집니다.
‘봐, 내 생각이 맞았잖아.’
심리학과 사회학에서는 이처럼 처음의 기대나 믿음이 행동에 영향을 주고, 그 행동이 결국 처음의 기대와 비슷한 결과가 나타나는 데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자기충족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이라고 부릅니다.
결과를 미리 맞히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오히려 흥미로운 부분은 미래에 대한 생각이 현재의 행동을 바꿀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차피 안 될 거야’라는 생각은 행동을 어떻게 바꿀까?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고 생각해보겠습니다.
A라는 사람은 ‘처음이니까 실수할 수도 있지만 조금씩 배우면 되겠지’라고 생각합니다. B라는 사람은 같은 일을 앞두고 ‘나는 이런 걸 원래 못하니까 분명 실패할 거야’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두 사람 모두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결과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실제 행동은 조금씩 달라질 수 있습니다.
A는 모르는 부분이 나오면 한번 찾아보거나 다른 사람에게 물어볼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잘되지 않아도 예상했던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다시 시도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반면 B는 첫 번째 어려움을 만났을 때 ‘역시 안 되는구나’라고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시도하는 횟수가 줄어들고 도움을 요청하기 전에 포기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시간이 지난 뒤 실제 결과에도 차이가 생길 가능성이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만 하면 무조건 성공한다는 뜻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아무리 잘될 것이라고 생각해도 준비하지 않으면 결과가 좋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걱정을 많이 했더라도 충분히 준비했다면 좋은 결과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자기충족적 예언에서 살펴볼 부분은 생각 자체가 마법처럼 현실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대가 행동을 변화시키는 하나의 조건이 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사람 사이에서도 이런 과정은 나타날 수 있습니다.
처음 만난 사람이 나를 싫어할 것이라고 예상하면 먼저 말을 걸기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표정도 굳고 대답도 짧아질 수 있습니다.
상대는 그 모습을 보고 ‘나랑 이야기하기 싫은가?’라고 생각해 조금 거리를 둘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나는 상대가 거리를 두는 모습을 보고 다시 생각합니다.
‘역시 나를 별로 안 좋아하네.’
처음에는 확인되지 않았던 예상이 서로의 행동을 거치면서 점점 실제처럼 느껴지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결과를 보고 ‘처음부터 그럴 줄 알았다’고 생각할 때는 결과가 나오기 전에 내가 어떻게 행동했는지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상이 현실과 닮아가는 과정에는 중간 단계가 있다
자기충족적 예언을 처음 접하면 ‘좋게 생각하면 좋은 일이 생긴다는 말인가?’라고 받아들이기 쉽습니다.
하지만 저는 오히려 그 사이에 있는 과정이 더 흥미롭게 느껴집니다.
기대 → 행동의 변화 → 상대나 상황의 반응 → 결과 → 처음 기대의 강화
이렇게 중간 과정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발표를 앞두고 ‘나는 발표만 하면 망친다’고 생각한다고 해보겠습니다.
그 생각 때문에 발표 연습을 계속 미룰 수도 있습니다. 어차피 잘하지 못할 거라 생각하니 연습할 의욕이 줄어듭니다.
준비가 부족한 상태에서 발표를 하면 실제로 말이 막힐 가능성이 커집니다. 발표가 끝난 뒤에는 다시 ‘역시 나는 발표를 못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결과만 보면 놓치는 것이 있습니다.
‘발표를 못하는 사람이라서 실패했다’와 ‘실패할 거라고 생각하면서 준비 행동까지 달라졌다’는 전혀 같은 설명이 아닙니다.
물론 모든 실패에 이런 과정이 숨어 있다는 뜻도 아닙니다. 충분히 준비했는데도 상황이 좋지 않을 수 있고, 자신의 행동과 관계없는 이유로 결과가 달라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자기충족적 예언을 이용해 모든 결과를 개인의 생각 탓으로 돌리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개념이 유용한 순간은 내가 바꿀 수 있는 중간 단계가 있었는지를 찾아볼 때라고 생각합니다.
처음의 생각을 완전히 없애는 것은 어렵습니다.
‘이번에도 안 될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은 자연스럽게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생각이 든 다음 행동까지 반드시 같은 방향으로 갈 필요는 없습니다.
‘안 될 것 같지만 일단 20분만 해보자.’
‘어색할 것 같지만 먼저 한마디는 해보자.’
‘실수할 것 같지만 한 번 더 연습해보자.’
결과를 억지로 긍정적으로 상상하기보다 그 예상 때문에 달라질 수 있는 행동 하나를 바꾸는 것이 더 현실적인 접근일 수 있습니다.
결과보다 먼저 내가 내린 결론을 한번 의심해보기
생각해보면 우리는 결과가 나오기 전부터 자신에 대해 꽤 많은 결론을 내립니다.
‘나는 원래 꾸준하지 못해.’
‘나는 사람들 앞에서 말을 못해.’
‘새로운 걸 시작해도 오래 못 갈 거야.’
이런 문장은 과거 경험에서 나온 판단일 수도 있습니다. 여러 번 비슷한 일을 겪었다면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자연스럽습니다.
하지만 과거의 경험을 설명하는 문장이 어느 순간 앞으로의 행동을 정하는 규칙이 되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나는 원래 꾸준하지 못하니까 이번에도 그럴 거야.’
이렇게 생각하면 하루를 놓쳤을 때 다시 시작하기보다 ‘역시 나는 안 돼’라는 결론으로 돌아가기 쉽습니다.
그래서 저는 자기충족적 예언을 ‘무조건 긍정적으로 생각하자’는 이야기보다는 결과가 나오기 전에 내가 너무 빨리 결론을
내리고 있지는 않은지 확인하는 방법으로 보는 편이 더 마음에 듭니다.
예상이 틀릴 수도 있다는 작은 가능성을 남겨두는 것입니다.
‘나는 원래 못해’ 대신
‘지금까지는 잘되지 않았어.’
‘이번에도 실패할 거야’ 대신
‘이번에는 어떻게 될지 아직 모르겠어.’
표현만 보면 큰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뒤의 문장에는 다음 행동이 들어갈 공간이 조금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결과가 예상대로 나오더라도 한 번 더 물어볼 수 있습니다.
‘정말 처음부터 정해진 결과였을까, 아니면 내가 그렇게 될 거라고 생각하면서 달라진 행동이 있었을까?’
답이 항상 있을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이 질문을 한번 해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라는 결론과 실제로 일어난 일을 조금 떨어뜨려 볼 수 있습니다.
저도 일이 잘되지 않았을 때 ‘역시 그럴 줄 알았어’라는 생각부터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을 하기 전에 내가 이미 포기하고 있었는지, 덜 준비했는지, 상대에게 먼저 벽을 만들지는 않았는지 돌아보면 결과를 보는 방식이 조금 달라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미래를 정확히 예상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결과가 나오기 전에 스스로 가능성을 너무 일찍 닫아버릴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다음에 ‘어차피 안 될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든다면 저는 그 생각을 억지로 없애기보다 한 가지를 더 물어보려고 합니다.
‘그래도 지금 내가 다르게 해볼 수 있는 행동은 하나 없을까?’
어쩌면 자기충족적 예언에서 가장 먼저 바꿔볼 수 있는 것은 미래에 대한 생각보다, 그 생각 다음에 이어지는 작은 행동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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