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인데도 행동을 보고 알게 되는 순간
누군가,
“너 이거 좋아해?”라고 물었는데 바로 대답하기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고, 굳이 찾아서 할 만큼 좋아하는 건 아닌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지난달에도 했고 이번 달에도 했습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시간이 나면 스스로 찾아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생각보다 내가 이걸 꽤 좋아하나 본데?’라는 생각이 듭니다.
조금 이상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는 당연히 내 마음을 들여다보면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오히려 내가 지금까지 무엇을 했는지를 보고 나서야 내 마음을 알아차리는 순간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성격을 생각할 때도 비슷합니다.
“나는 원래 부지런한 사람이 아니야.”
라고 생각했는데 몇 주 동안 빠뜨리지 않고 무언가를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면,
‘그래도 한번 시작하면 꾸준히 하는 편인가?’
라고 자신에 대한 생각이 조금 달라질 수 있습니다.
반대로 별로 관심이 없다고 생각했던 일인데 계속 관련된 것을 찾아보고 있다면,
‘내가 관심 없다고 생각했는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사람은 언제나 자신의 마음과 태도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자신의 행동과 그 행동이 일어난 상황을 살펴보면서 자신의 태도나 감정을 추론하기도 한다는 설명이 있습니다.
심리학자 대릴 벰(Daryl Bem)이 제안한 자기지각 이론(Self-Perception Theory)입니다.
쉽게 말하면 다른 사람의 행동을 보고,
‘저 사람은 저걸 좋아하나 보다.’
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때로는 나 자신에게도 비슷한 방식으로 판단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 마음이 분명하지 않을수록 행동이 하나의 단서가 될 수 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직접 볼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사람이 무엇을 하는지 살펴봅니다.
매주 산책하러 나가는 사람을 보면,
‘산책을 좋아하나 보다.’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특정 분야의 책을 계속 찾아 읽는 사람을 보면,
‘저 분야에 관심이 많은가 보다.’라고 추측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지각 이론에서는 때때로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행동을 단서로 비슷한 추론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특별히 운동을 좋아한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 있다고 해보겠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돌아보니 일주일에 몇 번씩 스스로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억지로 시킨 것도 아니고 보상을 받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면 자신의 행동을 보면서,
‘나는 생각했던 것보다 운동을 좋아하는 편인가 보다.’라고 자신의 태도를 추론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왜 그 행동을 했는지 설명할 만한 외부 이유가 있는가도 중요하게 볼 수 있습니다.
만약 회사에서 반드시 참여해야 하는 행사라서 매주 달렸다면,
‘나는 달리기를 좋아하나 보다.'라고 생각하기보다는,
‘회사에서 하라고 하니까 한 거지.’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행동을 설명할 분명한 외부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특별한 보상이나 압박이 없는데 스스로 계속 행동했다면 그 행동을 자신의 관심이나 성향과 연결해서 해석할 가능성이 생깁니다.
생활 속에서는 아주 작은 행동에서도 이런 모습을 떠올려볼 수 있습니다.
서점에 갈 때마다 요리책 코너를 구경합니다.
처음에는 별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몇 번 반복하다 보면,
‘나 요리에 관심이 꽤 있나 봐.’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과 이야기할 때 유독 편하게 웃고 먼저 연락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이 사람을 생각보다 많이 좋아하나?’라고 자신의 감정을 다시 바라볼 수도 있습니다.
물론 행동 하나만으로 사람의 마음을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한 번 우연히 한 행동과 여러 상황에서 반복되는 행동은 다를 수 있고, 행동에는 내가 바로 떠올리지 못한 여러 이유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지각 이론을 ‘내 행동이 곧 내 진짜 마음이다’라고 단순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핵심은 자신의 태도나 감정이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행동이 나 자신을 이해하는 하나의 정보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인지 부조화와 비슷해 보여도 출발점은 다르다
자기지각 이론을 보면 28호에서 알아본 인지 부조화가 떠오를 수 있습니다.
둘 다 행동과 태도의 관계를 설명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출발점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인지 부조화에서는 자신의 생각과 행동이 서로 맞지 않을 때 생길 수 있는 심리적인 불편함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나는 불필요한 소비를 하지 않는 사람이야.’
라고 생각하면서 충동적으로 비싼 물건을 샀다고 해보겠습니다.
자신에 대한 생각과 실제 행동 사이에 어긋남이 생깁니다.
이 불편함을 줄이기 위해,
‘그래도 오래 쓸 거니까 잘 산 거야.’처럼 행동을 설명하거나 태도를 바꿀 수 있습니다.
반면 자기지각 이론에서는 반드시 이런 강한 불편함이 먼저 존재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내 태도가 처음부터 뚜렷하지 않은 상황에서,
‘내가 자꾸 이 행동을 하고 있네.’
라는 사실을 관찰하고 자신의 태도를 추론하는 과정에 초점을 둡니다.
38호에서 알아본 문간에 발 들여놓기 효과와도 연결해서 생각할 부분은 있습니다.
작은 요청에 응한 행동이 이후 자신의 태도나 다음 행동에 영향을 줄 가능성을 설명할 때 자기지각의 관점이 논의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문간에 발 들여놓기 효과는 작은 요청에 응한 뒤 더 큰 관련 요청을 받아들이는 행동 변화가 중심이었습니다.
자기지각 이론은 그보다 넓게,
‘나는 왜 이런 행동을 했지?’
‘내 행동을 보면 나는 어떤 태도를 가진 사람일까?’
처럼 자신의 행동에서 자신의 태도와 감정을 추론하는 과정을 설명합니다.
비슷한 심리 개념이 여러 글에서 연결되는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실제 우리의 행동에는 딱 하나의 심리 현상만 작동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개념이 무엇을 중심으로 설명하는지를 구분해서 보는 것입니다.
내가 되고 싶은 모습과 작은 행동이 연결될 수도 있다
자기지각 이론을 생활에 적용한다고 해서 일부러 행동을 연기하면 성격이 완전히 달라진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매일 책을 5분 읽으면 나는 무조건 독서가가 된다.’
처럼 단순한 공식으로 볼 수도 없습니다.
다만 내가 나 자신을 판단할 때 생각뿐 아니라 내가 실제로 반복해온 행동도 하나의 근거가 될 수 있다는 점은 꽤 흥미롭습
니다.
우리는 가끔 자신에게 아주 오래된 설명을 붙이고 살아갑니다.
“나는 원래 꾸준하지 못해.”
“나는 정리하는 사람이 아니야.”
“나는 새로운 걸 잘 못해.”
그런데 실제 행동은 이미 조금 달라져 있을 수도 있습니다.
예전에는 며칠 만에 그만뒀지만 최근에는 한 달째 어떤 일을 이어가고 있을 수 있습니다.
정리를 싫어한다고 생각했는데 매일 자기 전에 책상을 정돈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새로운 일을 두려워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최근 몇 달 동안 처음 해보는 일을 여러 번 시도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머릿속에 오래 가지고 있던 자기평가만 믿기보다,
‘요즘 나는 실제로 무엇을 하고 있지?’
라고 행동을 한번 살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반대로 관심이 있다고 생각했던 일인데 계속 미루고 전혀 손이 가지 않는다면 그것도 하나의 정보가 될 수 있습니다.
물론,
‘행동하지 않았으니 나는 이걸 싫어하는 사람이야.’
라고 바로 결론 내릴 필요는 없습니다.
시간이 없었을 수도 있고 피곤했을 수도 있으며 다른 현실적인 이유가 있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행동을 볼 때는 상황까지 함께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가 스스로 선택한 행동인지, 누군가의 요구 때문에 한 것인지, 보상 때문에 한 것인지, 특별한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한 것인지 살펴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자기지각은 자신에게 새로운 꼬리표를 붙이는 방법이라기보다 내가 가지고 있던 자기 이미지와 최근의 실제 행동을 한번 비교해보는 방법에 더 가깝습니다.
저도 가끔,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닌데.’
라고 생각하면서 이미 꽤 오래 어떤 행동을 하고 있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오히려 행동 쪽이 지금의 나를 더 잘 보여주는 정보일 수도 있습니다.
사람은 계속 경험하고 달라지기 때문에 예전에 만들어둔 자기평가가 지금까지 정확하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그래서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헷갈릴 때는 마음속에서 답을 찾는 것만큼 내가 실제로 해온 행동을 돌아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다음에,
‘내가 이걸 정말 좋아하는 건가?’
‘나는 원래 어떤 사람이지?’
라는 생각이 든다면 질문을 하나 바꿔볼 수 있습니다.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나는 요즘 무엇을 반복해서 하고 있지?’
그 행동 하나가 나를 전부 설명해주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내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관심이나 태도를 발견하게 해주는 작은 단서는 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생각으로만 자신을 알아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살아온 모습을 다시 바라보면서 나 자신을 알아가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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