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을 때는 시작부터 막막합니다.
책상 정리를 해야 하는데 방 전체가 눈에 들어오고, 운동을 시작하려는데 앞으로 매일 해야 할 것부터 생각합니다. 공부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직 첫 장도 펼치지 않았는데 남은 분량을 보면 벌써 지친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아주 작은 것 하나를 끝내고 나면 묘하게 분위기가 달라지기도 합니다.
책상 한쪽을 정리했더니 다른 곳도 조금 해보고 싶어지고, 운동을 10분 했더니 ‘생각보다 할 만한데?’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려워 보이던 문제 하나를 직접 풀고 나면 그다음 문제에도 손이 갑니다.
물론 작은 성공 하나가 언제나 사람을 부지런하게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도 ‘내가 이걸 할 수 있겠다’고 느끼는 것은 이후 행동을 결정하는 데 꽤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심리학에서는 이와 관련해 자기효능감(self-efficacy)이라는 개념을 사용합니다.
자기효능감은 심리학자 앨버트 반두라(Albert Bandura)가 제시한 개념으로, 어떤 상황에서 필요한 행동을 자신이 해낼 수 있다고 믿는 정도를 말합니다.
흔히 말하는 자신감과 비슷하게 들리지만 완전히 같은 의미는 아닙니다.
왜 작은 성공 경험이 다음 행동에 영향을 줄 수 있는지, 그리고 자기효능감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자기효능감은 단순히 ‘나는 잘해’라고 생각하는 걸까?
자기효능감이라는 말을 처음 들으면 자신감부터 떠올리기 쉽습니다.
“나는 뭐든 잘할 수 있어.”
이런 마음을 가지는 것이 자기효능감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기효능감은 조금 더 구체적입니다.
예를 들어 운동에는 자신이 없지만 요리에서는 새로운 메뉴도 충분히 만들어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또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는 것은 어렵게 느끼지만 혼자 자료를 정리하는 일에는 자신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즉 자기효능감은 모든 것에 적용되는 막연한 자신감이라기보다 특정한 과제나 상황에서 내가 필요한 행동을 해낼 수 있다는 믿음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 차이는 실제 행동에서도 중요합니다.
어떤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나는 어차피 못할 거야’라고 생각한다면 어려움이 생겼을 때 금방 포기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쉽지는 않겠지만 한번 해볼 수는 있겠다’고 느낀다면 조금 더 시도해볼 가능성이 생깁니다.
여기서 자기효능감이 높으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나온다는 식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실제 결과에는 능력과 지식, 노력, 주변 환경 등 수많은 요소가 영향을 미칩니다. 내가 할 수 있다고 강하게 믿는 것만으로 부족한 기술이 저절로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어도 자신이 그 행동을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정도가 시도와 지속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자기효능감을 이해할 때 중요한 부분입니다.
작은 성공 경험은 왜 중요할까?
자기효능감을 만드는 데 영향을 주는 요소 가운데 반두라가 중요하게 다룬 것이 직접적인 성공 경험, 즉 성취 경험입니다.
생각해보면 자연스럽습니다.
아무리 주변에서 “너 할 수 있어”라고 말해도 내가 한 번도 성공해본 적 없는 일이라면 쉽게 믿기 어렵습니다.
반대로 아주 작은 일이라도 직접 해본 경험이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처음 자전거를 배울 때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넘어질 것 같아서 겁이 납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몇 미터라도 혼자 달리는 데 성공하면 그다음에는 조금 더 멀리 가볼 마음이 생깁니다.
‘방금 내가 했으니까 다시 할 수도 있겠다’는 근거가 생긴 것입니다.
공부에서도 비슷합니다.
처음부터 너무 어려운 문제만 계속 틀리면 ‘나는 원래 이걸 못해’라는 생각이 들기 쉽습니다. 반대로 현재 수준에서 노력하면 풀 수 있는 문제부터 해결하면서 조금씩 난도를 높이면 자신이 해낼 수 있다는 경험을 쌓을 수 있습니다.
다만 여기에도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무조건 쉬운 일만 반복해서 성공하는 것이 자기효능감을 높이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너무 쉬워서 노력할 필요조차 없는 일은 ‘내가 어려움을 해결했다’는 경험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조금 노력해야 하지만 시도해볼 만한 수준의 과제를 직접 해결해보는 것.
이런 경험이 쌓일수록 다음 도전에 사용할 수 있는 실제 근거도 하나씩 늘어납니다.
다른 사람이 해내는 모습을 보는 것도 영향을 줄까?
꼭 내가 직접 성공해야만 자기효능감에 변화가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나와 비슷한 사람이 어떤 일을 해내는 모습을 보는 것도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굉장히 어려워 보였던 일이 있는데, 비슷한 수준에서 시작한 사람이 연습을 거쳐 해내는 모습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저 사람도 처음에는 못했는데, 나도 연습하면 가능하지 않을까?’
반두라는 이런 대리 경험(vicarious experience) 역시 자기효능감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소로 설명했습니다.
주변의 말도 어느 정도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무조건 할 수 있어!”라고 근거 없이 이야기하는 것보다 “지난번에도 여기까지 해냈으니까 이번에는 이 부분부터 해보자”처럼 실제 행동이나 경험을 근거로 격려하는 것이 더 현실적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의 신체적·정서적 상태도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너무 긴장해서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을 ‘나는 이걸 못해서 이렇게 떨리는 거야’라고 해석할 수도 있고, 중요한 일을 앞두고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긴장이라고 받아들일 수도 있습니다.
결국 자기효능감은 단순히 긍정적인 말을 반복한다고 갑자기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직접 해본 경험, 다른 사람의 경험,
주변의 피드백, 자신의 상태를 해석하는 방식 등이 함께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큰 목표가 부담스럽다면 어디서부터 시작하면 좋을까?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목표를 크게 잡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제 매일 한 시간씩 운동해야지.’
‘이번 달에는 책을 열 권 읽어야지.’
처음에는 의욕이 생기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계획대로 되지 않으면 오히려 시작 전보다 더 하기 싫어질 때도 있습니다.
이럴 때 목표를 작게 나누는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운동 한 시간을 목표로 하기 전에 오늘 10분을 실제로 해보거나, 책 한 권을 끝내겠다고 생각하기 전에 몇 쪽부터 읽어보는 식입니다.
중요한 것은 단순히 목표를 작게 만들어 편하게 살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실제로 실행하고 완료할 수 있는 단위를 만들어 성공 경험을 쌓는 것에 의미가 있습니다.
한 번 성공했다고 갑자기 모든 것이 쉬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날에는 잘되고 어떤 날에는 다시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나는 원래 못해’라는 막연한 생각과 ‘지난번에는 여기까지 해봤다’는 실제 경험 사이에는 꽤 큰 차이가 있습니다.
후자에는 다음 행동을 결정할 때 참고할 수 있는 근거가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해야 할 일이 많아지면 오히려 전체 분량부터 보는 편입니다.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앞으로 해야 할 것들을 머릿속에 한꺼번에 펼쳐놓고 생각하다 보니, 가끔은 시작하기 전부터 힘이 빠집니다.
그럴 때 ‘조금이라도 해보자’는 말이 단순한 위로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자기효능감이라는 개념을 알고 보면 작은 시작의 의미가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오늘 10분을 했다고 큰 목표가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문제 하나를 풀었다고 갑자기 실력이 크게 늘어나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나는 적어도 이것까지는 해봤다’는 경험 하나는 남습니다.
그 경험은 다음번에 같은 일을 마주했을 때 사용할 수 있는 작은 근거가 됩니다.
그래서 큰일 앞에서 자꾸 시작을 미루고 있다면 처음부터 끝까지 해낼 자신이 생길 때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오히려 먼저 아주 작은 부분을 해보고 나서 이렇게 생각해보는 편이 나을 수도 있습니다.
“여기까지 했으니, 그다음은 어디까지 해볼까?”
자신감이 생겨야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작은 시작과 성공 경험이 쌓이면서 ‘할 수 있겠다’는 마음이 뒤따라오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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