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사람을 한꺼번에 소개받고 나면 이상하게 처음 몇 명의 이름은 기억나는데 중간부터 헷갈릴 때가 있습니다.
회의나 설명을 들을 때도 비슷합니다. 처음 들었던 이야기는 비교적 선명한데, 내용이 길어질수록 ‘아까 뭐라고 했더라?’ 싶어집니다.
반대로 마지막에 들은 내용이 유난히 잘 기억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는 예전에는 이런 차이가 단순히 집중력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처음에는 열심히 듣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집중력이 떨어져서 앞부분을 더 잘 기억하는 거라고요.
물론 집중력도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심리학에서는 정보가 제시되는 순서 자체도 기억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여러 정보를 차례로 접했을 때 처음에 나온 정보가 중간에 나온 정보보다 상대적으로 잘 기억되는 현상을 초두 효과(primacy effect)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처음 들은 정보를 비교적 잘 기억할까요? 그리고 흔히 말하는 ‘첫인상’도 초두 효과와 같은 이야기일까요?

초두 효과란 무엇일까?
사람에게 여러 개의 단어나 이름을 차례대로 보여준 뒤 기억나는 것을 말해보라고 하면 모든 항목이 똑같은 정도로 기억되지는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목록의 처음 부분과 마지막 부분이 중간 부분보다 상대적으로 잘 기억되는 경향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크게 계열 위치 효과(serial position effect)라는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중 목록의 앞부분에 있는 항목이 상대적으로 잘 기억되는 현상이 초두 효과입니다. 반대로 마지막 부분의 정보가 잘 기억되는 현상은 최신 효과(recency effect)라고 부릅니다.
생각해보면 조금 재미있습니다.
열 개의 정보를 같은 시간 동안 순서대로 보여줬다고 해도 우리 기억 속에서는 열 개가 똑같은 자리를 차지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니까요.
앞부분의 정보는 뒤이어 나오는 정보보다 먼저 접하게 됩니다. 그래서 상황에 따라 더 많이 되뇌거나 정리할 기회를 얻을 수 있고, 이런 과정이 기억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반면 정보가 계속 들어오기 시작하면 앞서 본 내용과 새로 들어온 내용을 함께 처리해야 합니다. 중간 부분의 정보는 상대적으로 불리해질 수도 있습니다.
다만 초두 효과가 어떤 정보를 처음 들으면 무조건 오래 기억한다는 법칙은 아닙니다.
정보의 양이나 제시 속도, 집중 정도, 내용을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 등 여러 조건에 따라 기억 결과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사람 이름을 여러 개 들으면 왜 중간부터 헷갈릴까?
새로운 모임에서 여러 사람을 한꺼번에 소개받는 상황을 생각해보면 초두 효과를 조금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사람이 이름을 말합니다.
‘김○○.’
아직 다른 정보가 많지 않으니 이름을 한 번 머릿속으로 되뇌어볼 여유가 있습니다.
두 번째, 세 번째 사람이 소개를 이어갑니다.
그런데 사람이 계속 늘어나면 상황이 복잡해집니다. 새로운 이름을 기억하면서 앞에서 들은 이름도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어느 순간부터는 얼굴과 이름이 뒤섞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소개가 모두 끝난 뒤에는 당황스럽게도 몇 사람의 이름만 기억납니다.
물론 실제 모임에서는 이름이 독특했는지, 그 사람과 대화를 했는지, 내가 얼마나 집중했는지 같은 요소들도 크게 작용합니다. 따라서 처음 소개받은 사람의 이름을 반드시 가장 잘 기억한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정보가 연속해서 주어지는 상황에서는 순서가 기억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 조금 다른 방법을 써볼 수 있습니다.
여러 정보를 기억해야 한다면 단순히 처음부터 끝까지 빠르게 읽는 것보다 몇 개씩 나누어 보고, 중간에 잠깐씩 정리해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정보가 계속 밀려들어오는 상황을 조금 줄일 수 있습니다.
초두 효과와 첫인상은 같은 것일까?
‘초두 효과’를 검색하다 보면 흔히 첫인상이 오래간다는 설명을 함께 만나게 됩니다.
둘은 관련지어 이야기할 수 있지만 완전히 같은 의미로 사용하면 조금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기억 연구에서 말하는 초두 효과는 여러 정보 가운데 앞부분에 제시된 정보가 상대적으로 잘 기억되는 현상을 가리킬 수 있습니다.
사람을 판단할 때 먼저 접한 정보가 이후의 평가에 영향을 주는 현상 역시 심리학에서 연구되어 왔습니다.
예를 들어 처음 만난 사람이 친절하게 행동했다면 이후 행동도 그 첫인상을 바탕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에 대한 첫인상에는 정보의 순서만 작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표정이나 말투, 당시의 상황, 기존 경험, 기대 등 수많은 요소가 함께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첫인상이 오래가는 이유는 전부 초두 효과 때문이다’라고 설명하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합니다.
일상에서 심리학 용어를 접할 때는 이런 구분이 꽤 중요합니다.
한 가지 개념으로 사람의 모든 행동을 설명하기 시작하면 심리학이 지나치게 간단한 공식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정보는 앞에 두는 것이 무조건 좋을까?
초두 효과를 알고 나면 ‘그러면 중요한 것은 무조건 처음에 말하면 되겠네’라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실제로 발표나 글쓰기에서는 중요한 내용을 초반에 명확하게 제시하는 것이 도움이 되는 상황이 있습니다.
상대방이 무엇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될지 미리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긴 설명을 시작하면서 핵심 목적부터 말하면 듣는 사람은 뒤이어 나오는 정보를 어느 틀 안에서 이해해야 하는지 알기 쉬워집니다.
하지만 이것 역시 모든 상황에 똑같이 적용되는 공식은 아닙니다.
마지막에 제시된 정보가 잘 기억되는 최신 효과도 있고, 무엇보다 정보 자체가 얼마나 의미 있고 흥미로운지 역시 중요합니다.
아무리 첫 번째에 이야기했다고 해도 관심이 전혀 없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정보라면 기억에 잘 남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초두 효과를 ‘사람을 설득하는 기술’처럼 사용하는 것보다는 정보의 순서도 기억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개념으로 보는 편이 자연스럽습니다.
공부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 부분만 여러 번 보고 중간 부분은 대충 읽는 식으로 활용하기보다, 중간에 쉬어가거나 내용을 작은 단위로 나누어 각각 다시 시작하는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긴 목록 하나를 계속 외우는 것보다 짧은 묶음으로 나누어 정리하면 각 묶음에서 새로운 시작점이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여러 정보를 접했는데 처음과 마지막만 어렴풋이 기억나고 중간 내용은 사라진 것 같은 경험은 생각보다 흔합니다.
저도 설명을 길게 듣고 나면 처음에는 분명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는데 중간쯤부터 ‘잠깐, 앞에서 뭐라고 했지?’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기억력이 부족해서 그런가 싶었는데, 기억은 애초에 들어오는 모든 정보를 똑같은 방식으로 처리하지 않습니다.
정보가 등장한 순서도 영향을 줄 수 있고, 집중 정도와 반복 여부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꼭 기억해야 하는 내용이 많다면 한 번에 끝까지 밀어붙이는 것보다 중간중간 멈추어 정리해보는 편이 나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를 처음 만났을 때 받은 인상이 아주 강하게 남아 있다면 그것 역시 한 번쯤 다시 생각해볼 만합니다.
처음 본 모습이 그 사람의 전부였을까?
첫 번째 정보가 기억에 잘 남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과, 첫 번째 판단을 끝까지 유지해야 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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