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직접 했으니 결과도 조금은 달라질 것 같은 마음
어떤 일은 내가 노력한 만큼 결과가 달라집니다.
시험을 앞두고 공부를 더 하면 아는 문제가 늘어날 수 있고, 요리를 하면서 불의 세기나 시간을 조절하면 음식의 상태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내가 무엇을 하느냐가 결과에 실제로 영향을 줍니다.
그런데 가끔은 내가 어떻게 해도 결과를 크게 바꿀 수 없는 상황에서도 이상하게 직접 선택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우연에 의해 결과가 정해지는 상황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무작위로 번호가 결정되는 것인데도 남이 고른 번호보다 내가 직접 고른 번호가 왠지 조금 더 마음에 듭니다.
특별한 의미가 있는 숫자를 넣거나 오랫동안 고민해서 고르면 결과와 조금 더 연결되어 있는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물론 숫자를 오래 고민했다고 해서 무작위 추첨의 확률이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도 직접 선택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느낌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일상에서도 비슷한 장면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미 눌린 엘리베이터 버튼을 한번 더 누르거나, 중요한 경기를 볼 때 내가 자리를 뜨면 꼭 일이 생길 것 같아 그대로 앉아 있거나, 어떤 일을 앞두고 늘 하던 행동을 하지 않으면 괜히 불안해질 때가 있습니다.
머리로 생각하면 내 행동과 결과 사이에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마음 한편에서는,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
하는 생각이 남기도 합니다.
왜 우리는 우연이나 외부 요인의 영향이 큰 상황에서도 내 행동이 결과에 어느 정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느끼는 걸까요?
이와 관련해 살펴볼 수 있는 개념이 통제의 착각(Illusion of Control)입니다.
통제의 착각은 실제로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정도보다 결과에 미치는 자신의 영향력을 더 크게 느끼거나 평가하는 경향을 말합니다.

선택할 수 있다는 느낌이 통제할 수 있다는 느낌으로 이어질 때
통제의 착각이라는 개념은 심리학자 엘런 랭어(Ellen Langer)의 연구로 널리 알려졌습니다.
랭어는 우연에 의해 결과가 결정되는 상황에서도 선택이나 경쟁처럼 평소 기술과 능력이 중요한 상황에서 볼 수 있는 요소가 들어가면 사람들이 자신이 결과를 통제할 수 있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을 연구했습니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생활하면서 수많은 선택을 합니다.
어떤 옷을 입을지, 무엇을 먹을지, 어떤 순서로 일을 할지 직접 정합니다.
그리고 이런 선택 가운데 상당수는 실제 결과에 영향을 줍니다.
비가 오는 날 우산을 챙기면 덜 젖고, 일찍 출발하면 약속 시간에 늦을 가능성을 줄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다 →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연결은 우리에게 아주 익숙합니다.
문제는 이 익숙한 감각이 우연성이 큰 상황에도 들어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직접 번호를 골랐다고 해보겠습니다.
번호를 선택했다는 행동 자체는 분명 내가 통제했습니다.
하지만 그 번호가 추첨될지는 내가 통제할 수 없습니다.
즉 선택 과정은 통제했지만 결과까지 통제한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둘 사이의 경계가 마음속에서는 생각보다 분명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특히 결과가 중요할수록 무엇이라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는 느낌은 마음을 조금 편하게 만들어줄 수도 있습니다.
기다리는 것밖에 할 수 없는 상황보다 작은 행동이라도 직접 할 수 있는 상황이 덜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직접 선택하는 모든 행동을 통제의 착각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직접 선택하면 실제로 결과가 달라지는 상황도 아주 많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 행동과 결과 사이에 실제로 어느 정도의 관계가 있는지입니다.
예를 들어 요리 시간을 조절하는 것은 음식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반면 무작위 추첨 번호를 오래 고민해서 고르는
것은 추첨 확률 자체를 높이지 않습니다.
겉으로는 둘 다 ‘내가 직접 선택했다’는 행동이지만 결과와 연결되는 방식은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우연히 잘된 경험이 내 행동 때문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통제의 착각은 어떤 행동을 한 뒤 우연히 좋은 결과가 나왔을 때 더 강해질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중요한 경기를 볼 때 우연히 특정 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응원하는 팀이 이겼다고 해보겠습니다.
한 번 정도라면 그냥 우연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비슷한 일이 몇 번 이어지면,
‘내가 여기 앉아서 봐야 잘되는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물론 내가 소파의 어느 자리에 앉느냐가 경기장에 있는 선수들의 경기력에 직접 영향을 주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내 행동 뒤에 원하는 결과가 반복해서 나타나면 두 사건이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버튼을 여러 번 누르는 행동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엘리베이터 호출 버튼을 이미 눌렀는데 엘리베이터가 늦게 오면 다시 한번 누릅니다.
두 번째 버튼을 눌렀더니 마침 엘리베이터가 도착합니다.
그러면 아주 잠깐,
‘역시 한 번 더 눌러야 해.’
하는 느낌이 들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두 번째 누름 때문에 엘리베이터가 빨라진 것이 아닐 가능성이 큰데도 행동과 결과의 시간적 순서가 가까우면 연결해서 받아들이기 쉽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 통제의 착각은 단순히 사람이 비합리적이어서 생기는 현상이라고만 보기는 어렵습니다.
우리는 원래 행동과 결과 사이의 관계를 찾아가면서 배우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행동 뒤에 좋은 결과가 반복되면 그 행동을 다시 해보는 것은 많은 상황에서 꽤 유용합니다.
문 손잡이를 돌렸더니 문이 열렸다면 다음에도 손잡이를 돌리는 것이 맞습니다.
문제는 우연히 함께 일어난 사건에서도 실제 인과관계가 있는 것처럼 느낄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33호의 자기봉사 편향과 차이도 보입니다.
자기봉사 편향은 결과가 나온 뒤,
‘잘된 것은 내 실력 덕분이야.’
처럼 결과의 원인을 나에게 유리하게 해석하는 경향이 중심입니다.
통제의 착각은 그보다 앞서,
‘내가 이것을 하면 결과가 달라질지도 몰라.’
처럼 내가 결과를 조절할 수 있는 범위를 실제보다 크게 느끼는 것에 가깝습니다.
둘 다 자신과 결과의 관계를 다루지만 바라보는 시점과 중심이 다른 것입니다.
내가 바꿀 수 있는 것과 바꿀 수 없는 것을 나눠보기
통제의 착각이라는 말을 들으면,
‘그럼 결과를 통제하려고 노력하면 안 되는 건가?’
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생활에서는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부분을 찾고 행동하는 것이 필요한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시험 결과 전체를 마음대로 정할 수는 없지만 공부할 시간은 조절할 수 있습니다.
날씨를 바꿀 수는 없지만 우산을 챙길 수는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평가할지는 완전히 통제할 수 없지만 내가 어떻게 행동할지는 어느 정도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통제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통제할 수 있는 범위를 조금 더 정확하게 구분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어떤 결과가 걱정될 때 저는 두 가지로 나눠보는 방법이 꽤 현실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아무리 신경 써도 내가 결정할 수 없는 것은 무엇인가?’
예를 들어 중요한 발표를 앞두고 있다면 자료를 준비하고 연습하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발표 당일 다른 사람이 어떤 질문을 할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생길지까지 완전히 통제할 수는 없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에 에너지를 쓰고 나머지는 어느 정도 불확실한 채로 두는 것입니다.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닙니다.
결과가 중요할수록 사람은 무엇이라도 더 하고 싶어질 수 있으니까요.
그래도 그때,
‘내가 지금 하는 행동이 실제로 결과를 바꿀 수 있는 행동인가?’
라고 한번 묻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저는 통제의 착각을 알아보면서 이 개념이 꼭 거창한 상황에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버튼을 한 번 더 누르는 것처럼 사소한 행동에서도 찾을 수 있고, 중요한 일을 앞두고 평소와 같은 순서를 지켜야 마음이 놓이는 모습에서도 조금씩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런 행동이 반드시 문제라는 뜻은 아닙니다.
나만의 습관이 긴장을 줄이고 마음을 안정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면 그 자체로 의미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다만 마음이 편해지는 것과 실제 결과를 통제하는 것은 다른 문제라는 점은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직접 선택했다고 해서 우연의 확률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고, 어떤 행동 뒤에 좋은 결과가 나왔다고 해서 반드시 그 행동이 결과의 원인이었던 것도 아닙니다.
다음에 결과를 기다리면서 자꾸 무언가를 더 하고 싶어진다면 저도 한번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이건 내가 정말 바꿀 수 있는 부분일까?’
그 질문의 답이 ‘그렇다’면 할 수 있는 만큼 해보면 됩니다.
하지만 답이 ‘아니다’라면 모든 결과를 내 손안에 넣으려고 애쓰기보다 조금 내려놓는 편이 나을 수도 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과 모든 것을 내가 통제해야 한다고 느끼는 것은 다르니까요.
'생활 속 심리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작은 부탁을 들어줬을 뿐인데 왜 다음 부탁도 거절하기 어려울까? 문간에 발 들여놓기 효과 알아보기 (0) | 2026.09.25 |
|---|---|
| 바꾸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는데 왜 익숙한 것을 그대로 선택할까? 현상 유지 편향 알아보기 (0) | 2026.09.24 |
| 처음 들은 것도 기억나는데 왜 마지막에 들은 말도 잘 남을까? 최신 효과 알아보기 (0) | 2026.09.22 |
| 관심이 생기고 나면 왜 갑자기 그것만 자꾸 눈에 들어올까? 선택적 주의 알아보기 (0) | 2026.09.21 |
| 잘되면 내 덕인 것 같고 잘못되면 상황 탓을 하고 싶은 이유는? 자기봉사 편향 알아보기 (0) | 2026.09.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