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처음에는 내 생각이 따로 있었는데 주변 사람들이 모두 반대 의견을 이야기하면 갑자기 자신이 없어질 때가 있습니다.
여러 명이 함께 메뉴를 고르는 상황을 생각해보겠습니다.
나는 처음부터 한 가지 메뉴가 먹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씩 다른 메뉴가 좋다고 이야기하기 시작합니다.
“나는 이게 더 좋은데.”
“나도 그거.”
“그럼 이걸로 할까?”
어느 순간 나만 다른 선택을 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분명 먹고 싶었던 것이 있었는데 괜히 혼자 다른 의견을 내기가 애매해집니다. 결국 “나도 아무거나 괜찮아”라고 말하고 다수가 선택한 쪽을 따라가기도 합니다.
온라인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처음 본 제품은 꽤 괜찮아 보였는데 후기를 살펴보니 부정적인 평가가 대부분이라면 내가 놓친 문제가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반대로 많은 사람이 좋다고 이야기하면 처음에는 별 관심이 없던 물건도 다시 보게 됩니다.
내가 직접 보고 판단했는데도 다른 사람들의 선택을 알게 된 순간 생각이 흔들리는 것입니다.
심리학에서는 이처럼 다른 사람이나 집단의 행동, 의견에 영향을 받아 자신의 판단이나 행동을 바꾸는 현상을 동조(conformity)라는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다른 사람의 의견을 알게 되면 자신의 생각까지 다시 확인하게 되는 걸까요?

모두 같은 답을 말하면 내 판단이 틀린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처음 가본 식당 앞에 두 가게가 나란히 있다고 생각해보겠습니다.
한쪽은 사람이 거의 없고 다른 한쪽에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습니다.
음식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다면 어느 쪽이 더 맛있을 것 같을까요?
많은 사람은 줄이 긴 식당에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저쪽에 많이 가는 걸 보면 맛있는 곳인가 보다.’
다른 사람의 행동이 하나의 정보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상황에 대해 충분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처음 가본 장소도 있고, 잘 모르는 제품을 골라야 할 때도 있습니다.
이럴 때 다른 사람의 선택은 판단에 사용할 수 있는 꽤 편리한 단서가 됩니다.
특히 내 판단이 확실하지 않을수록 다른 사람의 의견을 참고할 가능성이 커질 수 있습니다.
여행지에서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모르는데 여러 사람이 같은 방향으로 이동한다면 ‘저쪽인가 보다’라고 생각하는 것도 비슷합니다.
이처럼 다른 사람들이 더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그들의 판단을 따르는 영향을 정보적 사회 영향(informational social influence)이라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을 따라가는 행동이 항상 생각 없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닌 셈입니다.
때로는 모르는 상황에서 다른 사람의 행동을 참고하는 것이 꽤 합리적인 선택일 수도 있습니다.
답을 알고 있어도 다른 사람을 따라갈 수 있을까?
동조 연구에서 가장 유명한 실험 중 하나는 심리학자 솔로몬 아시(Solomon Asch)가 1950년대에 진행한 선분 판단 실험입니다.
참가자들은 기준이 되는 선 하나를 보고 여러 개의 선 가운데 어느 것이 기준선과 같은 길이인지 답해야 했습니다.
정답 자체는 비교적 쉽게 구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실험에는 중요한 장치가 있었습니다.
실제 참가자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연구자의 지시에 따라 특정 순서에서 일부러 같은 오답을 말했습니다.
앞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차례대로 똑같은 오답을 이야기하는 상황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혼자 봤다면 어렵지 않게 답할 수 있는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여러 사람이 자신과 다른 답을 말하자 일부 참가자들은 다수가 말한 오답에 맞추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물론 모든 참가자가 언제나 다수의 의견을 따른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시의 연구에서도 사람마다 반응에 차이가 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정답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비교적 단순한 상황에서도 집단의 의견이 개인의 판단에 영향을 줄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이 실험은 사람이 왜 집단의 의견을 따라가는지를 연구하는 대표적인 사례가 되었습니다.
틀렸다고 생각하면서도 따라가는 이유
다른 사람의 의견을 따르는 이유가 언제나 ‘저 사람들이 나보다 정확할 것 같아서’인 것은 아닙니다.
속으로는 내 판단이 맞다고 생각하면서도 겉으로는 집단의 의견에 맞추는 경우가 있습니다.
회의에서 여러 사람이 같은 의견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나만 반대한다고 생각해보겠습니다.
말을 꺼내는 순간 분위기가 어색해질 것 같고, 괜히 까다로운 사람처럼 보일까 신경 쓰일 수도 있습니다.
결국 의견을 말하지 않거나 다수 쪽에 동의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갑니다.
집단에서 받아들여지고 싶고, 지나치게 튀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 않은 마음이 생기는 것도 자연스럽습니다.
이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거나 거부당하지 않으려는 이유로 집단의 행동이나 의견에 맞추는 것을 규범적 사회 영향(normative social influence)이라고 설명합니다.
겉으로 나타난 행동은 똑같이 ‘다른 사람을 따라간 것’처럼 보여도 이유는 다를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은 ‘저 사람들이 더 잘 알겠지’라고 생각했을 수 있고, 다른 사람은 ‘나는 다르게 생각하지만 굳이 혼자 반대하고 싶
지 않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유행을 따라가는 것도 모두 동조일까?
어떤 옷이나 음식이 갑자기 유행하면 비슷한 것을 선택하는 사람이 빠르게 늘어날 때가 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고 ‘다들 남들 따라 하는 거야’라고 단순하게 말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같은 물건을 선택했다고 해서 모든 사람의 이유가 같은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사용해보고 좋아서 선택했을 수도 있고, 이전에는 몰랐던 제품을 유행을 통해 알게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친구가 사용하는 것을 보고 편리해 보여서 산 경우도 있습니다.
따라서 인기 있는 것을 선택했다는 결과만으로 무조건 동조라고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동조라는 개념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같은 행동을 했다는 사실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나 집단의 의견과 행동이 개인의 판단에 영향을 주었는가입니다.
사람의 행동에는 여러 이유가 동시에 작용할 수 있기 때문에 현실에서는 하나의 심리학 개념만으로 모든 선택을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참고하는 것이 항상 나쁜 것은 아니다
동조라는 말을 들으면 자기 생각 없이 남을 따라가는 부정적인 모습부터 떠올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판단을 참고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모든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수 없습니다.
처음 가는 식당을 고를 때 다른 사람의 후기를 참고하고, 익숙하지 않은 제품을 구입할 때 많은 사용자의 평가를 확인합니다.
위급한 상황에서 주변 사람의 행동을 보고 위험을 알아차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경험은 내가 직접 모든 것을 경험하지 않고도 정보를 얻을 수 있게 해줍니다.
문제는 다른 사람의 선택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내가 가지고 있던 정보까지 무시할 때 생길 수 있습니다.
‘사람이 많으니까 맞겠지.’
‘다들 그렇게 말하니까 내가 틀렸나 보다.’
이렇게 판단하고 있다면 한 번 정도는 멈춰볼 필요가 있습니다.
다수가 선택했다는 사실과 그 선택이 실제로 옳다는 것은 서로 다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내 생각인지, 분위기에 따라간 생각인지 한 번 확인해보기
여러 사람이 같은 의견을 이야기하면 혼자 다른 말을 꺼내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특히 정답이 분명하지 않은 문제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판단을 지키려면 무조건 남의 말을 듣지 않는 것보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기 전 내가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기억해보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제품 후기를 보기 전에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조건을 먼저 정해볼 수도 있습니다.
회의에서도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기 전에 자신의 생각을 간단하게 적어두면 분위기에 따라 판단이 달라졌는지 확인하기가 조금 쉬워집니다.
그렇다고 처음 생각을 끝까지 고집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른 사람에게 더 좋은 정보가 있다면 내 판단을 바꾸는 것이 오히려 합리적입니다.
중요한 것은 왜 생각을 바꾸었는지입니다.
새로운 정보를 알게 되어 판단을 바꾼 것인지, 아니면 단지 나만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불편해서 바꾼 것인지는 차이가 있습니다.
저도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같은 의견을 말하면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확신이 없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다른 사람들이 틀렸다고 생각할 필요도, 내 생각이 반드시 맞다고 고집할 필요도 없습니다.
대신 한 번 물어볼 수 있습니다.
‘나는 새로운 정보를 보고 생각을 바꾸고 있는 걸까, 아니면 사람들이 모두 같은 말을 하고 있어서 흔들리고 있는 걸까?’
다른 사람의 의견을 참고하면서도 그 질문을 놓치지 않는다면 집단의 판단과 나의 판단 사이에서 조금 더 균형 있게 선택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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