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설명하다가 답답해진 적이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아주 간단합니다. 어디를 누르면 되는지도 알고 있고,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설명도 간단하게 합니다.
“여기 들어가서 그거 누르면 돼.”
그런데 상대방이 다시 묻습니다.
“어디로 들어가?”
그 순간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아니, 이걸 왜 모르지?’
그런데 반대로 제가 처음 사용하는 앱이나 기계를 누군가에게 배울 때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상대방은 너무 쉽게 설명하는데 저는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화면에 버튼은 여러 개이고, 그 사람이 말하는 ‘그거’가 대체 무엇인지부터 모르겠는 경우도 있습니다.
참 이상합니다.
내가 알고 있을 때는 너무 쉬워 보이는데, 모르는 사람의 입장이 되면 똑같은 설명이 전혀 쉽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심리학에서는 어떤 정보를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이 그 정보를 모르는 사람의 관점에서 생각하기 어려워지는 현상을 흔히 지식의 저주(curse of knowledge)라고 부릅니다.
이름만 보면 꽤 거창합니다.
‘아는 게 왜 저주야?’
저도 처음에는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내용을 살펴보면 일상에서 생각보다 자주 겪는 현상입니다.

알고 나면 ‘모르던 때’로 돌아가기가 어렵다
처음 운전을 배웠을 때를 떠올려보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운전에 익숙한 사람은 차선을 바꾸고 주차하고 주변을 확인하는 행동을 꽤 자연스럽게 합니다.
오랫동안 반복해서 이제는 일일이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부분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이 처음 운전하는 사람 옆에 앉으면 이런 말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냥 사이드미러 보고 들어가면 되지.”
하지만 초보 운전자 입장에서는 ‘그냥’이 아닙니다.
사이드미러도 봐야 하고, 앞차와의 거리도 신경 쓰이고, 속도도 봐야 하고, 뒤에서 오는 차도 무섭습니다.
숙련자에게 하나의 동작처럼 느껴지는 일이 초보자에게는 여러 단계를 동시에 처리해야 하는 복잡한 일일 수 있습니다.
한번 익숙해진 뒤에는 내가 처음 배울 때 무엇을 몰랐는지까지 잊어버리기 쉽습니다.
그래서 설명하는 사람은 충분히 자세하게 알려줬다고 생각하는데 듣는 사람은 중간 단계가 몇 개씩 빠진 것처럼 느낄 수 있습니다.
노래를 알고 있는 사람에게는 박자만 들어도 노래처럼 들린다
지식의 저주와 관련해서 자주 소개되는 흥미로운 실험이 있습니다.
1990년 스탠퍼드대학교의 엘리자베스 뉴턴(Elizabeth Newton)이 진행한 연구로 알려져 있습니다.
실험에서는 참가자들이 두 역할로 나뉘었습니다.
한쪽은 사람들이 잘 아는 노래를 머릿속으로 떠올리면서 손가락으로 그 노래의 리듬을 두드렸습니다. 다른 사람은 노래를 듣지 못하고 오직 두드리는 소리만 듣고 어떤 노래인지 맞혀야 했습니다.
리듬을 두드리는 사람의 머릿속에는 이미 노래가 재생되고 있습니다.
멜로디도 알고 있고 가사도 알고 있으니 자신이 두드리는 박자가 꽤 명확하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상대방도 어느 정도는 쉽게 알아맞힐 거라고 예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듣는 사람에게 들리는 것은 멜로디가 아니라 단순한 두드림뿐입니다.
실제로는 맞히기가 훨씬 어려웠습니다.
저는 이 사례가 지식의 저주를 이해하기에 정말 쉬운 예라고 느꼈습니다.
내 머릿속에는 이미 전체 노래가 있는데, 상대방에게 전달되는 것은 탁탁거리는 박자뿐인 겁니다.
설명할 때도 비슷할 수 있습니다.
나는 전체 내용을 알고 있으니 짧게 이야기해도 앞뒤가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그런데 처음 듣는 사람에게는 내가 생략한 내용이 들리지 않습니다.
나는 머릿속에서 나머지를 자동으로 채우고 있지만 상대방에게는 그 정보 자체가 없는 것이죠.
“그거 있잖아”가 통하는 사람과 안 통하는 사람
가까운 사람끼리 대화하다 보면 설명을 굉장히 짧게 해도 알아듣는 경우가 있습니다.
“지난번에 거기 있잖아.”
이 정도만 말해도 상대가,
“아, 거기?”
하고 알아듣습니다.
서로 알고 있는 정보가 많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같은 방식으로 처음 듣는 사람에게 설명할 때 생깁니다.
업무를 오래 한 사람이 새로 들어온 사람에게,
“이건 평소처럼 처리하고 저쪽으로 넘기면 돼요.”라고 설명했다고 해볼게요.
설명하는 사람에게 ‘평소처럼’은 너무 명확합니다.
하지만 처음 온 사람에게는 평소가 없습니다.
무엇을 먼저 해야 하는지, 어디까지 처리해야 하는지, ‘저쪽’이 어디인지 하나씩 확인해야 합니다.
그래서 설명을 들은 사람은 계속 질문하고, 설명한 사람은 속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아까 다 설명했는데 왜 또 물어보지?’
그런데 정말 다 설명한 게 맞을까요?
어쩌면 내가 알고 있는 부분을 설명했다고 착각하고 있었던 것일 수도 있습니다.
아이에게 설명할 때 유난히 답답해지는 이유도 비슷할 수 있다
어른에게는 너무 당연한 것이 아이에게는 처음인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문제를 하나 풀어주면서,
“여기 읽어보면 답 나오잖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어른에게는 문제에서 중요한 부분이 금방 눈에 들어옵니다.
하지만 아이는 어디가 중요한 문장인지부터 구분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저도 뭔가를 설명하다 보면 ‘아까 이야기했는데 왜 또 모르지?’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저는 이미 답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문제를 보고 있습니다.
답을 아는 사람이 문제를 읽는 것과 답을 모르는 사람이 처음 문제를 읽는 것은 꽤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누군가가 설명을 못 알아들을 때마다 모두 지식의 저주 때문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집중하지 않았을 수도 있고, 설명 자체가 어려웠을 수도 있고, 단순히 기억하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상대방이 계속 같은 부분에서 막힌다면,
‘왜 이것도 모르지?’라고 생각하기 전에
‘내가 너무 많은 단계를 생략해서 말하고 있나?’를 한 번 생각해보는 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글을 쓸 때도 내가 아는 것을 독자도 안다고 생각하기 쉽다
지식의 저주는 말로 설명할 때만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글을 쓸 때도 비슷한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내가 어떤 주제에 대해 자료를 많이 찾아본 뒤 글을 쓰면 머릿속에는 이미 배경지식이 꽤 쌓여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처음 보는 사람에게는 낯선 단어인데도 별다른 설명 없이 사용하게 됩니다.
약자를 처음부터 쓰거나, 앞뒤 설명 없이 전문용어를 넣기도 합니다.
글쓴이에게는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내용인데 읽는 사람은 중간에서,
‘그래서 이게 무슨 뜻이지?’하고 멈출 수 있습니다.
재미있는 건 글을 쓴 직후에는 이런 부분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겁니다.
내가 방금 쓴 내용이라 머릿속에 맥락이 전부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간이 조금 지난 뒤 다시 읽어보거나, 해당 내용을 잘 모르는 사람이 읽는다고 생각하면서 살펴보면 빠진 설명이 보일 때가 있습니다.
저도 글을 쓰면서 ‘이 정도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겠지’라고 생각할 때가 있는데, 사실 그 ‘이 정도’의 기준이 제 기준일 수 있습니다.
내가 이미 찾아본 내용과 처음 검색해서 들어온 사람이 알고 있는 내용은 다를 테니까요.
설명을 잘하려면 더 많이 아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어떤 분야를 아주 잘 아는 사람이라고 해서 반드시 초보자에게 가장 쉽게 설명하는 사람인 것은 아닐 수 있습니다.
많이 알수록 설명할 수 있는 내용은 많아집니다.
하지만 동시에 너무 익숙해져서 어디부터 설명해야 하는지 찾기가 어려워질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처음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이 초보자가 어디에서 막히는지 더 쉽게 기억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자신도 얼마 전까지 같은 부분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설명할 때는 ‘나는 정확히 알고 있는가?’와 함께 다른 질문도 필요합니다.
‘상대방은 어디까지 알고 있을까?’
출발점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상대가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을 처음부터 길게 설명하면 지루할 수 있고, 반대로 모르는 부분을 당연하다고 넘겨버리면 설명을 따라가기 어렵습니다.
좋은 설명은 내가 가진 정보를 전부 쏟아내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서 있는 위치에서 다음 한 걸음을 보여주는 것에 더 가까울지도 모르겠습니다.
“왜 이것도 몰라?”라는 생각이 들 때
지식의 저주를 알아두면 누군가에게 설명하다 답답해질 때 생각을 조금 바꿔볼 수 있습니다.
상대방이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능력이 부족하다고 바로 판단하기보다,
‘혹시 내가 알고 있는 걸 상대도 안다고 생각했나?’
하고 한 번 확인해보는 것입니다.
방법은 생각보다 단순합니다.
‘이 부분은 알고 있어?’라고 먼저 물어볼 수도 있고,
“여기까지는 괜찮아?”하면서 중간중간 확인할 수도 있습니다.
설명할 때 ‘그냥’, ‘당연히’, ‘원래’ 같은 말을 자주 사용하고 있다면 한 번쯤 멈춰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내게는 당연한 것이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는 전혀 당연하지 않을 수 있으니까요.
반대로 내가 설명을 듣는 입장이라면 모르는 부분을 질문하는 것이 이상한 일도 아닙니다.
설명하는 사람에게는 이미 머릿속에 있는 정보가 나에게는 없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그게 뭔데?”라고 다시 묻는 것이 당연할 때도 있습니다.
저는 지식의 저주라는 이름만 처음 봤을 때는 굉장히 거창한 심리 현상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내용을 알고 나니 오히려 아주 평범한 대화 속에서 자주 만나는 일이었습니다.
내가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처음 몰랐던 시절을 상상하기 어려워지는 것.
누군가에게 설명하다가 답답한 마음이 올라올 때 다음에는 이 질문을 한 번 떠올려보려고 합니다.
‘이게 정말 누구에게나 쉬운 걸까, 아니면 이미 알고 있는 나에게만 쉬운 걸까?’
같은 내용을 알고 있는 사람끼리는 몇 마디만으로도 대화가 통합니다.
하지만 모르는 사람에게 설명할 때는 내가 머릿속에서 자동으로 채우고 있는 부분까지 밖으로 꺼내줘야 합니다.
어쩌면 설명을 잘한다는 것은 어려운 말을 많이 아는 능력보다, 내가 이미 알고 있다는 사실을 잠시 잊고 처음 보는 사람의 자리로 돌아가 보는 능력에 더 가까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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