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일이 끝난 뒤 이런 말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내가 그럴 줄 알았어.”
스포츠 경기에서 예상 밖의 팀이 이겼을 때도 그렇고, 어떤 제품이 갑자기 인기를 끌었을 때도 비슷합니다.
“저거 처음부터 잘될 것 같더라.”
주가가 크게 오르거나 떨어진 뒤에도 종종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때 상황을 보면 당연히 떨어질 수밖에 없었지.”
결과를 듣고 나면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지금 알고 있는 정보를 가지고 과거를 다시 바라보면 당시에도 여러 힌트가 있었던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나도 처음부터 어느 정도 결과를 예상했던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결과를 알기 전에도 정말 그렇게 확신했을까요?
저는 이 부분이 궁금했습니다.
생각해보면 일이 벌어지기 전에는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겠다” 하면서 고민했던 것 같은데, 결과가 나오고 나면 이상하게 한쪽 가능성만 굉장히 뚜렷하게 보일 때가 있거든요.
심리학에서는 결과를 알게 된 뒤 그 일이 처음부터 실제보다 더 예측 가능했던 것처럼 느끼는 경향을 사후확신 편향(hindsight bias)이라고 합니다.
영어 표현 때문에 조금 어렵게 느껴질 수 있지만, 우리가 흔히 하는 “그럴 줄 알았어”라는 말과 연결해서 생각하면 훨씬 이해하기 쉽습니다.

결과를 알고 나면 과거의 힌트가 더 잘 보인다
시험 결과가 발표됐다고 생각해보겠습니다.
생각보다 점수가 낮았습니다.
결과를 확인한 뒤 지난 며칠을 돌아봅니다.
‘그날 공부를 조금밖에 못 했잖아.’
‘마지막 문제도 헷갈렸고.’
‘시험 볼 때 느낌도 별로였어.’
하나씩 떠올리다 보면 낮은 점수를 예상할 만한 이유가 꽤 많았던 것처럼 느껴집니다.
반대로 점수가 아주 잘 나왔다면 어떨까요?
이번에는 다른 기억이 떠오를 수 있습니다.
‘그래도 이번에는 문제집을 끝까지 풀었잖아.’
‘시험 보기 전에 정리도 한 번 했고.’
‘생각보다 잘 풀리긴 했어.’
같은 시험을 준비했던 시간인데도 어떤 결과가 나왔는지에 따라 과거에서 눈에 들어오는 장면이 달라질 수 있는 것입니다.
결과를 모를 때는 여러 가능성이 동시에 존재합니다.
시험을 잘 볼 수도 있고 못 볼 수도 있습니다. 경기가 어느 팀의 승리로 끝날지도 확실하지 않습니다. 새로 나온 제품이 인기를 끌지 조용히 사라질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결과가 나온 순간 가능성은 하나로 정리됩니다.
그러면 이미 알고 있는 결과를 중심으로 과거의 정보가 훨씬 자연스럽게 연결돼 보일 수 있습니다.
“당연히 그럴 줄 알았지”는 정말 처음 생각이었을까?
사후확신 편향과 관련해 심리학자 바루크 피쇼프(Baruch Fischhoff)의 연구가 자주 언급됩니다.
1970년대 피쇼프는 어떤 사건의 여러 가능한 결과를 제시한 뒤, 참가자들에게 각각의 결과가 일어날 가능성을 판단하도록 하는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일부 참가자에게는 실제 결과에 대한 정보도 함께 알려줬습니다.
그러자 결과를 알고 있던 사람들은 그 결과가 처음부터 일어날 가능성이 더 높았던 것처럼 평가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이미 결과를 알고 있으니 과거 상황을 볼 때도 그 결과와 연결되는 정보가 더 자연스럽게 보인 것입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사후확신 편향은 단순히 거짓말을 하거나 잘난 척하려고 “나는 알고 있었어”라고 말하는 것과는 조금 다릅니다.
본인 스스로도 처음부터 그렇게 생각했던 것처럼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도 예전에 했던 생각을 정확하게 다시 떠올리라고 하면 자신이 없습니다.
결과를 알기 전에는 분명 여러 가지 가능성을 고민했을 텐데, 결과를 확인하고 나면 지금 알고 있는 내용이 너무 선명해서
그전의 불확실했던 상태를 그대로 떠올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스포츠 경기를 보고 나면 감독의 선택이 너무 쉬워 보이는 이유
스포츠 경기를 보다 보면 이런 상황도 있습니다.
감독이 어떤 선수를 교체했는데 결과가 좋지 않았습니다.
경기가 끝난 뒤에는 말하기 쉽습니다.
“거기서 왜 그 선수를 넣었지?”
“딱 봐도 아닌데.”
그런데 감독이 결정을 내리던 순간에는 아직 경기 결과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선수를 교체했을 때 잘될 가능성도 있었고, 그대로 두었을 때 상황이 더 나빠질 가능성도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미 결과를 본 상태에서 그 결정을 평가합니다.
그래서 당시에는 불확실했던 선택이 결과가 나온 뒤에는 훨씬 단순해 보일 수 있습니다.
이런 모습은 스포츠에서만 나타나는 것도 아닙니다.
뉴스를 볼 때도,
“그 정책은 처음부터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었어.”
사업이 실패했을 때도,
“그 아이디어는 애초에 성공하기 어려웠지.”
어떤 선택이 좋은 결과를 냈을 때는,
“처음부터 잘될 만했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물론 실제로 미리 문제를 정확하게 예상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 “나는 예상했어”라고 말했다고 해서 전부 사후확신 편향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핵심은 결과를 알게 된 뒤 당시의 예측 가능성을 실제보다 높게 평가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내 선택을 돌아볼 때도 결과가 기준이 되기 쉽다
사후확신 편향을 알아보면서 저는 다른 사람을 평가할 때보다 내가 했던 선택을 돌아볼 때 더 신경 써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 선택을 했는데 결과가 좋지 않았다고 해볼게요.
그 순간부터 과거의 선택이 너무 잘못된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때 왜 그걸 골랐지?’
‘생각해보면 이상한 점이 많았는데.’
‘내가 조금만 더 생각했으면 알았을 텐데.’
결과를 이미 알고 있으니 당시에도 지금만큼 명확하게 알 수 있었던 것처럼 느끼는 것입니다.
하지만 선택하던 순간의 나는 지금의 나와 가지고 있는 정보가 달랐습니다.
결과를 모르고 있었고, 여러 가능성 가운데 하나를 골라야 했습니다.
당시 가지고 있던 정보로 충분히 고민해서 결정했는데 결과가 좋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결과가 좋았다고 해서 그 과정이 무조건 좋은 판단이었다고 말하기도 어렵습니다.
별다른 근거 없이 선택했는데 운 좋게 결과가 좋았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결과만 보고 과거의 선택을 평가하면 결정 과정 자체를 제대로 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결과가 나빴다”와 “판단이 나빴다”는 항상 같은 말은 아니다
이 부분은 처음 생각했을 때 저도 조금 헷갈렸습니다.
결과가 나빴으면 선택도 잘못한 것 아닌가 싶었거든요.
그런데 둘은 항상 같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 일기예보에서 비가 올 확률이 높다고 해서 우산을 들고 나갔는데 결국 비가 오지 않았다고 해보겠습니다.
결과만 보면 우산을 괜히 들고 나간 셈입니다.
그렇다고 당시 우산을 챙긴 판단까지 반드시 잘못됐다고 할 수 있을까요?
그 순간 가지고 있던 정보로는 비가 올 가능성이 높았으니 우산을 챙기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었을 수 있습니다.
반대 상황도 가능합니다.
비가 올 가능성이 높다는 예보를 봤지만 귀찮아서 우산을 두고 나왔는데 운 좋게 비가 오지 않았습니다.
결과는 좋았습니다.
그렇다고 처음 판단이 아주 훌륭했다고 말하기는 애매합니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결과와 판단의 질을 따로 보는 것이 왜 필요한지 조금 이해가 됩니다.
기록을 남겨두면 ‘그때의 나’를 조금 더 정확하게 볼 수 있다
사후확신 편향을 완전히 피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결과를 이미 알고 있는 상태에서 그 사실을 머릿속에서 지우고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으니까요.
그래도 도움이 되는 방법은 있습니다.
중요한 결정을 하기 전에 당시 생각을 간단하게 기록해두는 것입니다.
“나는 A가 될 가능성이 조금 더 높다고 생각한다.”
“다만 B가 될 수도 있다고 본다.”
“이 선택을 하는 이유는 이 세 가지 때문이다.”
이 정도만 적어둬도 나중에 결과가 나온 뒤 당시의 생각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기억에만 의존하면,
‘나 원래 이렇게 될 줄 알았는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기록을 보면,
‘아, 그때는 나도 꽤 고민하고 있었네.’라는 걸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저도 계획을 세웠다가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처음부터 계획을 잘못 세운 것처럼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당시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을 겁니다.
결과를 안 지금의 기준으로 과거의 나를 평가하면 당시에는 알 수 없었던 정보까지 알고 있었어야 한다고 요구하는 셈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럴 줄 알았어” 대신 한 번 더 생각해보기
사후확신 편향을 안다고 해서 앞으로 “그럴 줄 알았어”라는 말을 절대 하면 안 되는 건 아닙니다.
정말 예상했던 일도 있을 테니까요.
다만 어떤 결과를 보고 너무 당연하게 느껴질 때 한 번쯤 질문해볼 수는 있습니다.
‘결과를 몰랐을 때도 나는 정말 이렇게 확신했을까?’
그리고 다른 사람의 과거 선택을 평가할 때도 비슷하게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지금의 나는 결과까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 결정을 내리던 순간에는 그 결과를 몰랐습니다.
그때 가지고 있던 정보는 무엇이었는지, 어떤 선택지가 있었는지를 같이 봐야 조금 더 공정하게 판단할 수 있습니다.
저는 사후확신 편향을 찾아보면서 과거의 선택을 돌아보는 방식에 대해 생각하게 됐습니다.
결과가 좋지 않으면 자꾸,
‘내가 왜 그랬지?’ 라는 생각부터 하기 쉽거든요.
그런데 그때의 나는 지금 알고 있는 결과를 몰랐습니다.
당연히 지금보다 판단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그렇다고 결과가 좋지 않았던 일을 그냥 운이 없었다고 넘기자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잘못 판단한 부분이 있었다면 다음에는 바꾸면 됩니다.
다만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 제대로 찾으려면 결과를 알고 있는 지금의 시선과 그때 실제로 가지고 있던 정보를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결과가 나온 뒤에는 모든 것이 한 방향으로 이어진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 일이 일어나기 전에는 여러 갈래의 길이 있었을 겁니다.
그래서 다음에 또 “내가 그럴 줄 알았지”라는 생각이 든다면 저도 한 번쯤 되물어보려고 합니다.
‘정말 그때도 알았을까? 아니면 지금 결과를 알고 있어서 그렇게 느끼는 걸까?’
그 질문 하나만으로도 이미 지나간 일을 조금 더 균형 있게 바라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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