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에서 어떤 사고 소식을 본 날은 평소에는 별생각 없이 하던 일이 갑자기 신경 쓰일 때가 있습니다.
비행기 사고 뉴스를 보고 나면 비행기를 타는 일이 괜히 무섭게 느껴지기도 하고, 자동차 사고 영상을 여러 번 보고 나면 운전할 때 평소보다 사고 가능성이 크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실제로 위험이 갑자기 커진 것은 아닐 수도 있는데 말이죠.
저는 이런 경험이 뉴스뿐만 아니라 평범한 일상에서도 꽤 자주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떤 물건이 고장 났다는 이야기를 연달아 몇 번 들으면,
‘요즘 이 제품 고장이 진짜 많은가?’싶어집니다.
주변에서 감기에 걸렸다는 이야기를 며칠 사이 계속 들으면,
‘요즘 다 감기인가 봐.’라는 생각도 자연스럽게 듭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조금 이상합니다.
내 주변에서 몇 번 들었다는 것과 실제로 그런 일이 전체적으로 많이 일어난다는 것은 같은 이야기가 아니니까요.
그럼에도 최근에 들었거나 기억에 강하게 남은 일은 실제보다 더 흔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심리학에서는 판단할 때 머릿속에서 얼마나 쉽게 떠올릴 수 있는지를 하나의 단서로 사용하는 방식을 가용성 휴리스틱(availability heuristic)이라고 합니다.
‘휴리스틱’이라는 단어가 조금 어렵게 느껴지지만 쉽게 말하면 복잡한 문제를 매번 처음부터 계산하지 않고 빠르게 판단하기 위해 사용하는 일종의 간편한 판단 방식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우리는 매번 정확한 통계를 확인하면서 판단하지 않는다
어떤 일이 얼마나 자주 일어나는지 정확하게 알고 싶다면 실제 자료를 확인하는 것이 가장 확실합니다.
그런데 일상에서는 매번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요즘 감기 걸린 사람이 많은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해서 바로 전체 인구의 통계를 찾아보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겁니다.
대신 자연스럽게 내가 알고 있는 사례를 떠올립니다.
‘지난주에 친구도 걸렸고.’
‘아이 친구도 아팠다고 했고.’
‘오늘도 누가 감기라고 했는데.’
이렇게 사례가 여러 개 쉽게 떠오르면 정말 흔한 일처럼 느껴집니다.
반대로 아무 사례도 떠오르지 않으면 별로 자주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느낄 수 있습니다.
이 방식은 꽤 효율적입니다.
우리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는 경험을 이용하면 매번 복잡한 정보를 새로 찾지 않고도 빠르게 판단할 수 있으니까요.
문제는 쉽게 떠오르는 것과 실제로 자주 일어나는 것이 항상 같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강렬한 사건은 기억에서 더 쉽게 꺼내진다
가용성 휴리스틱을 이해하면서 흥미로웠던 부분은 단순히 최근에 본 것만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기억에 강하게 남는 사건도 쉽게 떠오를 수 있습니다.
평범한 하루에 별일 없이 운전해서 집에 돌아온 경험은 오래 기억하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너무 흔한 일이니까요.
그런데 길에서 큰 사고를 목격했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며칠이 지나도 그 장면이 떠오를 수 있습니다.
그러면 다음에 운전할 때 사고 가능성이 평소보다 훨씬 크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뉴스 역시 비슷합니다.
매일 아무 사고 없이 운항을 마친 수많은 비행기는 뉴스에 나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드물게 큰 사고가 발생하면 여러 매체에서 반복적으로 다뤄질 수 있습니다.
사람 입장에서는 사고 장면과 이야기를 여러 번 접하게 되고, 그만큼 기억에서도 쉽게 떠올릴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실제 발생 가능성과는 별개로 위험이 더 크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즉, 기억에 잘 남는 사건이 반드시 가장 흔한 사건인 것은 아닙니다.
가용성 휴리스틱은 어떻게 알려졌을까?
가용성 휴리스틱은 심리학자 아모스 트버스키(Amos Tversky)와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의 연구로 잘 알려진 개념입니다.
두 연구자는 사람들이 확률이나 빈도를 판단할 때 항상 정확한 계산을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간편한 판단 방식을 사용한다는 점을 연구했습니다.
그중 하나가 가용성 휴리스틱입니다.
어떤 사례가 기억에서 쉽게 떠오르면 우리는 그 일이 실제로도 더 자주 발생한다고 판단하기 쉬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꽤 자연스럽습니다.
머릿속에서 사례가 다섯 개나 금방 떠오르는 일과 아무리 생각해도 사례 하나 찾기 어려운 일이 있다면 첫 번째 일이 더 흔하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실제로 많은 상황에서는 이 방법이 어느 정도 맞을 수도 있습니다.
자주 경험한 일일수록 기억에 남은 사례도 많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기억이 만들어지는 과정에는 빈도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최근에 일어난 일인지, 얼마나 충격적이었는지, 내가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등에 따라서도 어떤 기억은 훨씬 쉽게 떠오를 수 있습니다.
바로 여기에서 실제 빈도와 내가 느끼는 빈도 사이에 차이가 생길 수 있습니다.
같은 이야기를 여러 번 보면 정말 많아진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요즘은 같은 사건을 여러 경로에서 접하기도 쉽습니다.
뉴스에서 한 번 보고, 인터넷에서 관련 글을 보고, 짧은 영상으로 또 보고, 누군가 공유한 글에서 다시 볼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는 하나의 사건인데 내 입장에서는 여러 번 접한 셈입니다.
그러면 그 사건과 비슷한 사례가 머릿속에서 훨씬 쉽게 떠오르게 됩니다.
예를 들어 특정 제품의 문제를 다룬 게시물을 본 뒤 비슷한 후기 몇 개를 연달아 읽었다고 해보겠습니다.
처음에는 ‘이런 경우도 있구나.’ 정도였다가 계속 보다 보면,
‘이 제품은 문제가 굉장히 많은가?’라는 생각으로 바뀔 수도 있습니다.
정말 문제가 많은 제품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몇 개의 사례만으로 전체 제품의 문제 발생률을 알기는 어렵습니다.
반대로 온라인에서 거의 이야기되지 않는 문제라고 해서 실제로 드문 일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인터넷에서 눈에 잘 띄는 정도와 현실에서 실제로 발생하는 빈도 역시 항상 같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부정적인 일이 더 쉽게 떠오르면 부정성 편향과 같은 걸까?
여기까지 읽다 보면 16호에서 알아봤던 부정성 편향과 비슷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둘은 실제 생활에서 함께 나타날 수 있지만 중심은 다릅니다.
부정성 편향은 좋은 정보와 나쁜 정보가 있을 때 부정적인 정보에 더 큰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반면 가용성 휴리스틱에서는 정보가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보다 얼마나 쉽게 기억에서 떠오르는가가 중요합니다.
긍정적인 사례도 쉽게 떠오른다면 판단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주변에서 어떤 투자로 돈을 벌었다는 이야기를 연달아 들었다고 해보겠습니다.
성공 사례가 머릿속에 쉽게 떠오르면 그 일이 실제보다 흔하거나 성공하기 쉬운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즉, 가용성 휴리스틱은 반드시 나쁜 사건이나 위험을 크게 느끼는 경우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내 주변의 경험이 세상 전체처럼 느껴질 때
우리가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정보 중 하나는 역시 직접 경험한 일입니다.
가족, 친구, 직장 동료처럼 가까운 사람에게 일어난 일도 기억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주변 경험을 바탕으로 전체 상황을 판단할 때가 많습니다.
“내 주변에서는 다 이걸 쓰던데?”
“내가 아는 사람들은 거의 그렇게 하던데?”
이런 말도 일상에서 자주 합니다.
그 말 자체가 틀렸다는 뜻은 아닙니다.
실제로 내 주변에서는 그럴 수 있습니다.
다만 내 주변에서 흔한 것과 전체에서 흔한 것은 다를 수 있습니다.
나와 비슷한 나이, 지역, 관심사, 생활환경을 가진 사람들과 주로 이야기한다면 내가 접하는 사례에도 어느 정도 공통점이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 주변 사례가 많이 떠오른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사람이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실제 모습과 차이가 생길 수 있습니다.
기억에 잘 나는 사례와 실제 숫자를 한번 나눠보기
그렇다고 일상에서 무언가 판단할 때마다 통계자료부터 찾아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렇게 살면 너무 피곤할 것 같습니다.
저도 매번 숫자를 확인하면서 결정할 자신은 없습니다.
다만 돈이나 안전처럼 중요한 판단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한 번쯤 확인해볼 수 있습니다.
‘내가 지금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실제 자료 때문일까, 아니면 최근에 본 사례가 너무 잘 떠올라서일까?’
예를 들어 어떤 사건 뉴스를 보고 위험하다고 느꼈다면 실제 발생 빈도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제품을 고를 때 좋거나 나쁜 후기 몇 개가 유난히 기억에 남았다면 전체 후기의 수나 여러 출처를 같이 살펴볼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머릿속에서 가장 쉽게 떠오르는 사례 하나가 전체 판단을 대신하는 것을 조금 줄일 수 있습니다.
쉽게 떠오른다는 이유만으로 가장 흔한 것은 아니다
가용성 휴리스틱을 알아보면서 저는 우리가 생각보다 ‘떠오르는 기억’을 많이 이용해서 판단한다는 점이 재미있었습니다.
무언가를 생각했을 때 사례가 바로바로 떠오르면 그 판단에는 꽤 확신이 생깁니다.
‘봐, 이런 일이 많잖아.’라고 생각하기 쉬우니까요.
그런데 실제로는 많이 일어나서 기억에 남은 것이 아니라 최근에 봤거나, 충격적이었거나, 여러 번 접했기 때문에 쉽게 떠오르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런 판단 방식이 무조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매 순간 모든 정보를 분석하지 않고도 빠르게 생활할 수 있게 해주는 꽤 유용한 방법이기도 합니다.
다만 중요한 판단에서는 그 빠른 느낌이 실제 상황과 같은지 한 번 더 확인해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저도 앞으로 어떤 일을 보고, “요즘 이런 일이 진짜 많은 것 같아.”
라는 생각이 들면 한 번쯤 스스로 물어보려고 합니다.
‘정말 많아진 걸까? 아니면 최근에 이 이야기를 많이 봐서 그렇게 느끼는 걸까?’
아마 둘 중 어느 쪽인지 바로 알 수 없는 경우도 많을 겁니다.
그래도 그 질문을 한 번 해보는 것만으로도 머릿속에서 가장 먼저 떠오른 사례와 실제 세상의 모습을 조금은 구분해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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